"들리는 설교와 안 들리는 설교" <7.3.2020>
이수관목사 2020-07-04 09:37:59 1039

 

지난번에 설교에 대한 얘기가 나왔으니 조금만 더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한 가지 이해를 바라는 것은 저는 저 자신이 좋은 설교자라고는 절대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전에 한 유명한 목사님의 책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아마도 설교가운데 수필같이 내용이 좋은 단편들을 모아 놓은 책 같았습니다. 글이 너무나 주옥같고 아름다워서 읽으면서 이 분에 비하면 저의 설교는 쓰레기 같다고 느껴졌고, 설교집을 내는 것은 평생 꿈도 꾸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하지만, 분명 조악한 설교인데도 많은 분들이 설교가 들린다라고 평가를 해 주십니다. 일 년에 두 번 열리는 우리 교회 새교우 환영회에서는 새교우들이 우리 교회에 관해서 가장 좋은 점 한 가지를 발표하는 시간이 있는데, 많은 경우는 목장이 좋다는 말을 하지만 그 다음 많이 나오는 얘기가 설교가 들린다는 말입니다. ‘어쩌다 교회에 가면 설교 시간에 졸기 바빴는데, 여기 오니까 설교가 들린다.’라고 하기도 하고, ‘매 주일 꼭 나를 두고 하시는 말씀 같아서 깜짝 놀란다라고 하는 분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어떤 점 때문에 교회를 막 다니기 시작한 분들이 들린다고 하는 것일까? 거기에 비해서 안 들리는 설교는 어떤 점이 그렇게 만들까? 하고 생각해 보면서, ‘! 아마도 이런 점 때문에 그런 평가를 하는 모양이구나.’ 하고 이제까지 제가 얻는 결론을 한번 얘기해 보려고 합니다. 목사님들앞에서 설교 얘기를 하는 것 실례라는 것과 따라서 별로 인기가 없는 글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적어봅니다.

 

어떻게 하면 들리는 설교가 될까?

 

첫 번째는 서론이 분명할 때 들리는 설교가 될 수 있습니다. 설교가 시작되고 난 후 3-4분안에 내가 오늘 무엇을 얘기하려고 한다, 오늘 설교에서 우리는 어떤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라는 얘기를 분명히 해 주면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집중하기 시작합니다. 물론 그것이 청중들이 관심이 있어 하는 문제면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청중은 강연이 시작되고 3분 안에 이 얘기를 들을지 안 들을지를 결정한다고들 하지요.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에 재미있는 농담을 하거나, 감동적인 예화를 얘기하는 것은 일시적인 관심을 끌 수는 있지만 오래 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 보다는 내가 무슨 얘기를 할 것이다 라고 방향을 잡아 줄 때 청중은 집중합니다. 그에 반해 시작한지 5분이 지났는데도 무슨 얘기를 하려고 저런 말을 하시나 하는 생각이 들면 청중은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합니다.

 

두번째는 적당히 논점을 바꾸어 주고 전개를 빨리할 때 들리는 설교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수필이나 논설문을 30-40분에 걸처서 읽어 준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같은 논점의 이야기가 지루하게 이어질 때, 우리의 뇌는 그것을 따라 오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뇌는 화자의 말이 조금만 이해가 안 가거나 혹은 약간의 지루함만 느껴져도 금방 멍 해지고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에서 저는 삼대지 설교는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삼대지 설교는 논점과 작은 주제의 전환이 빠르기 때문에 하기에 따라서 청중의 주의를 빼앗기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번째는 문어체보다는 구어체를 사용할 때 들리는 설교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청중에게 아름다운 글을 읽어 주어 보십시오. 5분은 집중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금방 주의를 잃게 됩니다. 사람의 뇌는 듣는 것만으로 논리와 문체의 아름다움을 동시에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아름다운 문장을 만들려고 하지 않고 일상의 구어체를 사용할 때 청중이 집중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더 좋은 것은 구어체를 넘어서 대화체를 쓸 때 훨씬 더 청중이 주목하기도 쉽고, 이해도 쉽습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자기 생각을 적은 글을 가지고 와서 40분간 나에게 읽어 준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걸 들으며 이해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거기에 비해서 요즈음 교육방송이나 유튜브에 나오는 강연자들의 얘기는 훨씬 더 집중하기 쉽습니다. 그들은 대화식으로 얘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중간 중간에 청중이 하고 싶은 질문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 그럼 이 대목에서 여러분은 이런 질문이 생기지요? 그건 이래서 그렇습니다...’ 또는 제가 이렇게 얘기할 때 아마도 여러분은 이런 생각을 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건 오해입니다. 자 보세요…’ 그렇게 대화체를 쓰고, 논리를 대화식으로 끌고 갈 때 훨씬 더 주목하기가 쉽습니다. 제가 초반에 언급했던 매 주일 꼭 저한테 하는 말씀 같아요.’ 하는 말이 나오는 이유 중에 하나가 이 점인 것 같습니다. 본인이 가진 생각을 얘기하기 때문에 ? 내 생각을 어떻게 알았지?’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네번째는 어렵지 않고 단순하고 쉽게 얘기할 때 들리는 설교가 될 수 있습니다. 칩 하스/딘 하스가 쓴 ‘Made to stick’ (스틱, 웅진윙스 출판사)을 읽어보면 어떤 메시지는 머리에 착 달라붙고 어떤 메시지는 집중도 어렵고, 듣고 나면 금방 잊어버린다고 합니다. 저자는 그 차이를 발생시키는 원인을 6가지로 정리하고 있는데, 하나하나가 설교에 도움이 되니 한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저자가 그 중에 가장 중요하다고 꼽는 것이 메시지의 단순성입니다. 누가 들어도 이해가 되도록 단순하게 얘기하는 것이 머리에 남고 청중을 집중할 수 있게 한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화자는 복잡하게 설명하는 것을 좋아 한다고 하네요. 필요치도 않는 예화를 넣고, 어려운 전문 단어를 써 가면서 얘기하고, 특별히 전문가나 알만한 사실을 상대방이 당연히 알고 있는 것처럼 얘기하기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전문가만이 가지고 있는 교만일 수도 있고, 과시욕 일 수 도 있다고 합니다.

 

특별히 저자는 지식의 저주라는 표현을 씁니다. 전문가들은 공부한 것과 아는 것이 너무 많아서 그걸 어떤 식으로든지 상대방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유혹에 시달린다고 합니다. 상대방은 그것에 아무런 관심도 없을 뿐 아니라 그것이 지금 하고자 하는 말에 아무 도움이 안되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지식의 저주라는 것이지요. 또한 전문가들은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상대방도 당연히 알고 있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가정을 깔고 얘기할 때 상대방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식의 저주라는 것이지요.

 

따라서 설교를 준비할 때 반드시 물어야 하는 것은 이 얘기가 여기 꼭 들어가야 해?’ 하는 것입니다. 꼭 안들어가도 괜찮은 얘기가 거기 들어가 있다면 그 얘기는 청중의 집중을 방해 합니다. 따라서 설교에서는 무엇을 말하는가 보다 무엇을 뺄 것인가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이 됩니다. 두 번째 물어야 하는 질문은 이 말은 오늘 교회에 처음 온 사람이 들어도 이해가 가는 말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질문을 계속 던질 때 메시지가 단순해지고 들리는 설교가 되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실제적인 적용점을 줄 때 들리는 설교가 됩니다. 애매한 적용이나 하기 어려운 적용은 청중을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따라서 실제로 실천 가능한 적용점을 얘기해 줄 때, 그렇게 해 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고 실천하게 만듭니다. 실제적인 적용을 주기 위해서 우리는 성도들의 삶의 현실과 어려움, 그리고 고민을 잘 알고 있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목사님이니까 저런 소리 하시지하게 되고 그 때부터는 안 들리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 목사들은 성도의 삶에 깊이 들어가 있고, 그들과 호흡하고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경태 : 서론을 분명히 하고 내용을 좀 더 단순화해서 지식의 저주가 아닌 들리는 설교를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위의 평신도목자님의 하소연(?)도 잘 담아두어서, 귀한 하나님의 말씀이 성도들의 마음에 잘 전달되도록 더 노력하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07.04 13:06)
차명훈 : 설교를 앞두고 여러가지를 돌아보게 되지만 특히 서론부문에서의 선명한 촛점, 대화체 전달이 제게는 새롭게 도전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07.04 13:28)
오명교 : 지식의 저주 = 실감합니다. 제가 늘 유혹 받는 부분입니다. 명확하게 정리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07.05 06:25)
오명교 : 이번 주간에 몇 분 목사님과 함께 모여 가정교회 설교에 대해 나눔을 갖습니다. 좋은 지침을 주셔서 몇 번 읽고 모이기로 하였습니다. (07.06 03:05)
이수관목사 : 평신도 목자분이 쓴 글, 우리들에게 많이 도움이 되는 글이었는데.. 왜 지우셨어요? 괜찮았는데... ^^ (07.06 11:09)
김정록 : 매주 설교 작성을 위해 고민하고 기도하는 목회자들에게 좋은 통찰력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적용하도록 하겠습니다. (07.06 16:32)
이남용 : 들리는 설교를 위해 서론과 실제적인 적용점을 주도록 더 노력해야 겠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 (07.06 17:43)
이은진 : 저 네 가지만 지키면 정말 들리는 설교가 될 것 같습니다^^. 특별히 서론에 관한 말씀이 저에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07.08 12:41)
임관택 : 원장님, 지난 주일설교 준비를 마치고 원장님의 위 글에 비추어 다시 한번 정리를 했더니 더욱 좋았던 것 같습니다. 매 설교 원고마다 위와 같은 내용에 따라 점검하고자 합니다. 큰 교훈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07.09 01:58)
이수관목사 : 대부분 서론에 대한 얘기가 도움이 되었다고 하시네요.

서론에 대해서 조금 더 보충을 한다면 서론에서 무엇을 얘기할 것이다 라는 말을 할 때, 궁금증을 유발하는 것이 좋습니다. 궁금증을 유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회중의 통념에 도전을 가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어떠 어떠한 문제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심지어는 기독교인들도 이러 이러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없지 않습니다. 우리 가운데도 아마 많은 분들이 그럴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과연 그럴까요? 만약 그렇다면 이런 말씀은, 이런 경우는 어떻게 되는 것이겠습니까..? 저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이런 것을 살펴 보려고 합니다..."

이런 식으로 말을 이끌어 가면서 마지막에 우리가 가진 이런 의문들을 풀어 보겠다 라고 하면 청중의 집중을 끌어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07.09 09:42)
김기섭 : 설교의 책임을 충실히 할 수 있는 좋은 가이드 라인을 제시해 주셨다고 생각됩니다. 청중에 대한 좀더 깊은 이해를 할 수 있었습니다. (07.09 15:44)
정옥희 : 원장님 대화체 설교를 깔끔하게 정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작은 교회의 장점이라고 생각했는데 들리는 설교의 요소였네요 ~~^^ (07.09 23:42)
박상민 : 문어체보다 구어체, 구어체를 넘어서 대화체로 가는 좋은 설교자가 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07.10 03:37)
이동근 : 원장님 칼럼 자체가 이미 대화체로 제게 들립니다. 잘 정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07.10 20:32)
이경준 : "지식의 저주"라는 말이 재미있습니다. 교회 개척 후 처음에 제 설교가 그랬던 것 같습니다. 후에 "설교에는 내용, 재미, 감동 이 세 가지가 들어있어서 성도들을 설득하여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로 바꾸었습니다. (07.11 06:06)
이병화 : 설교를 준비하면서 원장님의 칼럼을 다시한번 읽어보면서 체크할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무엇을 말하는가 보다 무엇을 뺄것인가 고민중입니다^^ (07.11 07:06)
김영길 : 자신의 설교 사역을 돌아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반적인 흐름을 정리하고 점검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좀 더 잘 들리는 설교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07.12 09:59)
임재룡 : 가정교회의 설교에 대해서 자세히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07.12 19:44)
이정우 : 거룩한 부담인 설교~
평생 고민해야 할 설교...
소중한 인싸이트를 더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07.14 02:01)
계강현 : 들리는 설교를 위한 팁들을 세세하게 일러주셔서 큰 도움이 됩니디.^^ 뺄 걸 빼야 하고 단순화하고 비신자를 항상 염두에 두고 실천 가능한 적용점을 제시하는 것 등등 모두 설교에 피와 살이 되는 내용입니다. 감사~ (07.16 15:53)
김성수 : 설교, 목사에게 영광이면서도 매 주 같게 되는 두려움인 것 같습니다. 설교에 목마름이 많은데 가정교회판 설교 씨시리즈로 계속 연구와 토론이 필요해 보입니다.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07.25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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